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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명문 및 관사명분청사기
양산지역에서 제작된 명문분청사기는 관사명분청사기로 김해 상동 분청사기요지 출토 [양산장흥고명]와 양산 가산리 분청사기요지 출토 [양산인수부명]이 있으며 지명분청사기로 [양산]명 대접 등이 가산리 분청사기요지와 분묘에서 확인되었다. 관사명을 새긴 것은 태조 17년(1417) 장흥고에 공납되는 자기의 일부가 중간에서 없어지는 경우가 생겨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일환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에 소속된 자기소를 살펴보면 양산은 금음산리에 자기소가 있었으며, 행정구역상 경주부에 속하며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중품 자기를 생산하는 지역이었다. 금음산리는 지금의 동면 가산리 호포 분청사기요지로 비정되며, [양산장흥고]의 관사명분청사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양산이 중앙에 공납하기 위한 양질의 관사명 분청사기를 주도적으로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들 자기소에서 생산된 관사명분청사기는 소비지인 한양으로 운송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라는 지리적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 서로간의 왕래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 언양, 김해 등 경상남도 지역에서 제작된 공납용자기는 낙동강 수계를 이용하여 상주나 문경지역까지 운송되었고 이후에는 계립령(鷄立嶺)이나 1414년 개통된 鳥嶺(문경새재) 등의 육로를 통해 한양까지 운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에 소속된 자기소를 살펴보면 양산은 금음산리에 자기소가 있었으며, 행정구역상 경주부에 속하며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중품 자기를 생산하는 지역이었다. 금음산리는 지금의 동면 가산리 호포 분청사기요지로 비정되며, [양산장흥고]의 관사명분청사기가 확인되었다. 이는 양산이 중앙에 공납하기 위한 양질의 관사명 분청사기를 주도적으로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들 자기소에서 생산된 관사명분청사기는 소비지인 한양으로 운송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라는 지리적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 서로간의 왕래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 언양, 김해 등 경상남도 지역에서 제작된 공납용자기는 낙동강 수계를 이용하여 상주나 문경지역까지 운송되었고 이후에는 계립령(鷄立嶺)이나 1414년 개통된 鳥嶺(문경새재) 등의 육로를 통해 한양까지 운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