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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을 축조한 창원부사 _박정빈 초상 (朴廷賓 1650~1737)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빈(國賓),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박중미(朴中美)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박정빈은 창원부사 외에도 현감·영장·방어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금정산성을 축조한 공으로 길이 잘 든 말을 하사받았다. 금정산성은 경상도관찰사 조태동이 1702년(숙종 28) 축성을 건의하였고, 『동래부지』에 의하면 1703년(숙종 29)에 완성되었다고 한 걸로 보아 이 무렵에 관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숙종실록』에는 1718년(숙종 44) 4월 대간으로부터 “창원부사 박정빈은 본래 양산의 향리 출신인데 갑자기 집 가까운 큰 고을의 부사에 제수되었으니, 청컨대 개차하소서”라는 건의를 받은 후에 곧 바로 교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정빈은 죽은 후에 1738년(영조 14) 왕으로부터 글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오직 영(靈)은 죽전(竹箭)에 단미(檀美)하고, 기궁(箕弓)이 전업(專業)이라, 언어는 순순(恂恂)하고 자태는 홀홀한지라. 남전(藍田)에 사석(射石)하니 소년에 이름을 떨쳤다. (후략)” 라고 하였다.
박정빈의 묘소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석총조에 의하면 “고을 북쪽 호계촌 뒤에 있다. 사복정 심노숭이 지문(誌文)을 지었고, 참판 권익상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초상은 화격과 필선, 색채의 사용방식으로 보아 지방의 승려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국빈(國賓),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박중미(朴中美)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박주한(朴柱漢)이고, 할아버지는 박동석(朴東奭)이다.
박정빈은 창원부사 외에도 현감·영장·방어사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금정산성을 축조한 공으로 길이 잘 든 말을 하사받았다. 금정산성은 경상도관찰사 조태동이 1702년(숙종 28) 축성을 건의하였고, 『동래부지』에 의하면 1703년(숙종 29)에 완성되었다고 한 걸로 보아 이 무렵에 관인으로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숙종실록』에는 1718년(숙종 44) 4월 대간으로부터 “창원부사 박정빈은 본래 양산의 향리 출신인데 갑자기 집 가까운 큰 고을의 부사에 제수되었으니, 청컨대 개차하소서”라는 건의를 받은 후에 곧 바로 교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박정빈은 죽은 후에 1738년(영조 14) 왕으로부터 글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오직 영(靈)은 죽전(竹箭)에 단미(檀美)하고, 기궁(箕弓)이 전업(專業)이라, 언어는 순순(恂恂)하고 자태는 홀홀한지라. 남전(藍田)에 사석(射石)하니 소년에 이름을 떨쳤다. (후략)” 라고 하였다.
박정빈의 묘소는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석총조에 의하면 “고을 북쪽 호계촌 뒤에 있다. 사복정 심노숭이 지문(誌文)을 지었고, 참판 권익상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초상은 화격과 필선, 색채의 사용방식으로 보아 지방의 승려화원이 그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