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시립박물관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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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효자를 기리다 _ 효자리비(孝子里碑)

양산의 효자를 기리다  _ 효자리비(孝子里碑) 사진 1
양산의 효자를 기리다  _ 효자리비(孝子里碑) 사진 2
양산의 효자를 기리다  _ 효자리비(孝子里碑) 사진 3
효자리비는 효자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양산 지역민들이 세운 비석으로 양산시 중부동(구 양산교육청) 일원에 있던 비석을 옮겨온 것이다. 비석의 주인공은 고려 우왕 때 진사를 지낸 박창(朴暢)과 이공미(李公美)라는 인물로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양산군 효자조에 따르면 ‘박창은 부모상을 당해 깊은 골짜기에 움막을 짓고 애통해 하고 있었다. 왜구 3인이 칼을 들고 왔다가 그가 애통해하는 이유를 물으니 박창이 사실대로 대답하자, 왜적도 감동하여 오히려 해치지 않아서 무사히 삼년상을 마쳤다. 정문(旌門)을 세우고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이공미의 비는 비신(碑身) 윗부분의 양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형태로, 윗면에 큰 글씨로 ‘효자지리(孝子之里)’라고 쓰고, 그 아래에 비문을 새겼다. 비문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정성을 다하여 묘를 지킨 이공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박창에 대한 비석은 네모난 형태로 윗면에 ‘효자리(孝子里)’라고 쓰고 그 아래에는 ‘박창(朴暢) … ’이라는 작은 글씨로 쓰여 있었으나 현재는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어렵다. 이공미에 대한 비석은 양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형태로 윗면에 ‘효자지리(孝子之里)’라고 2단으로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역시 작은 글씨로 ‘이공미(李公美) …’라고 새겨져 있었으나 역시 마멸이 심한 상태이다.
당초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153-3번지에 있었으나, 도 문화재인 양산 효자리비의 원활한 보존관리를 위하여 양산시립박물관 내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