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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이씨와 이겸수 장군
학성(鶴城)은 울산(蔚山)의 옛 이름으로 이예(李藝)를 시조로 하고 경상남도 양산시에 대대로 거주하고 있는 성씨이다. 현재곡강파(曲江派)·농소파(農所派)·청량파(청량派)·월진파(越津派)·서면파(西面派) 등으로 분파되어 있다.
학성이씨의 시조 이예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화통완구(火筒碗口) 등 병기 제작에도 공적이 컸는데 1443년(세종 25) 대마도주와 계해약조(癸亥約條:교역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오는 선박을 매년 50선으로 한정하고, 조선으로 건너올 때는 도항(渡航) 허가증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명시함으로써 조선초 대일관계 안정화에 기여했다)를 체결한 공으로 공패(功牌)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피로인(被虜人:적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물론 명나라의 피로인을 데리고 오는 일에도 힘써 명에서도 공패를 받았다. 이예의 손자 이직강(李直剛)이 처음 양산 서면(西面)에 살았고, 그 후손이 양산시 주남동 및 각지에 살고 있다.
이종실의 5세손 이겸수(李謙受)는 조선시대 의병장으로 사명대사와 함께 왜적의 적진으로 파견되어 강화회담을 안내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학성이씨의 시조 이예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화통완구(火筒碗口) 등 병기 제작에도 공적이 컸는데 1443년(세종 25) 대마도주와 계해약조(癸亥約條:교역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오는 선박을 매년 50선으로 한정하고, 조선으로 건너올 때는 도항(渡航) 허가증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명시함으로써 조선초 대일관계 안정화에 기여했다)를 체결한 공으로 공패(功牌)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피로인(被虜人:적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물론 명나라의 피로인을 데리고 오는 일에도 힘써 명에서도 공패를 받았다. 이예의 손자 이직강(李直剛)이 처음 양산 서면(西面)에 살았고, 그 후손이 양산시 주남동 및 각지에 살고 있다.
이종실의 5세손 이겸수(李謙受)는 조선시대 의병장으로 사명대사와 함께 왜적의 적진으로 파견되어 강화회담을 안내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